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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영 사진 출처 : 온라인 커뮤니티> 

 정주영은 일제강점기 시절 가난한 농부의 자식으로 태어나,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하였지만 큰 인물이 되고 싶어 소를 판돈을 가지고 상경을 하였지만 아버지에게 잡히고 난 뒤 다시 재차 상경하기도 하였다. 그는 쌀가게 점원으로 일한적이 있는데, 당시 쌀가게 주인에게 돈을 빌려 쌀가게를 직접 운영하였지만 화재로 모든것이 다 소실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빌려서 사업을 시작하기도 하였다. 당시 그는 신용이 재산이라는 믿음으로 사업을 하였고, 이후 태평양 전쟁이 발발후에 광산에서 일하면서 차에 대해서 알기 시작한다. 

 

 해방 후 그는 관공서 차를 취급하는 자동차 수리공장을 세웠으며, 큰돈이 오가는 건설회사의 사람들을 보고 건설회사를 차리게 되었다. 그는 한국전쟁 당시 유엔군 묘지 제작의 공사에 참여했을때 보통적으로 묘지에 심는 잔디 대신 보리를 심으면서 당시 군 사령관에게 큰 호감을 받기도 하였다. 이후 건설회사는 군 관련한 공사를 계속적으로 진행해나갔으며 그 규모는 점점더 커 나아갔다.

 

 하지만 경복고령의 고령교(낙동교 대교)를 공사하다 여름 폭우로 인해 모드가 떠내려가 큰 손실을 본적이 있었고, 한국 최초로 태국에 가 고속도로공사를 진행하였는데 당시 공사는 적자를 기록했지만, 충실히 공사한 결과 신용이라는 값진 결과를 얻게 된다. 이후 군사혁명이 일어나고, 국토 재건에 중점을 두는 정부의 정책과 맞아서 공사량이 대폭적으로 증가하게 된다. 당시 경부고속도로 건설(다른 업체들도 참여는 함)을 주도적으로 진행하였고, 일본인의 설계자는 콘크리트 중력식 댐하자고 하였지만, 대통령의 재가를 통해 사력식 댐으로 하여 소양감댐 건설도 하게 된다.  

 

 한편 그는 1967년에는 현대차를 세워 첫 독자모델인 ‘포니’를 생산 하기도 하였으며, 유조선 설계도 한장으로 배를 수주했다는 이야기나, 돈을 빌려서 조선소를 세우고 배를 생산해 내는 상상하기 힘든 기업가 정신을 발휘하기도 하였다. 또한 88올림픽 유치에 상당한 기여를 한 사람이었으며, 1998년에는 소떼를 몰고 판문점을 거쳐 방북하기도 하였다. 당시 소떼에는 새끼를 벤 암소를 보냈다는 일화도 유명하다. 또한 그는 기업이윤의 사회환원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1977년부터 2001년까지 아산사회복지재단을 설립하였고, 재단의 설립 취지는 ‘우리 사회의 가장 불우한 이웃을 돕는다’ 이었다.  

 

 이외에도 정주영은 울산에 자동차공장과 조선소를 세우고, 단양에는 시멘트공장을 세웠으며, 중동에 진출하여 주베일 산업 항공사와 전국의 도로 항만, 준설 , 매립 공사를 진행하였으며, 서산간척지 공사도 하였다.

 

 그의 대표적인 명언은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이다.

 

세학사 미디어팀 안현준(senciha@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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