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완뉴스] 

 

오늘날은 생식 보조술이라는 것이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개인적 행복과 사회적 유용성을 증진시킨다는 데에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 널리 시행하고 있다. 생식 보조술이란, 아기를 갖고 싶어도 자연 임신이 되지 않아 인공적으로 임신을 유도하는 방법을 뜻한다. 즉, 불임 부부를 돕기 위해 사용되는 다양한 방법을 뜻하는 의료시술을 말한다. 좋은 의도로 만들어진 시술이기는 하지만, 사실상 생식 보조술은 정자와 난자를 사고 판다는 뜻을 말하는 생식세포 매매라는 여러 문제점들을 가지고 있다.

 

매매의 문제에는 미래 과학연구 발전을 위하여 과학적 실험과 연구를 위해서 매매를 하는 경우도 있고, 불임인 부부가 임신을 위해 다른 사람에게서 생식 세포를 사는 경우로 두 가지의 문제로 나뉠 수 있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의도일지라도 생명의 근원이라 할 수 있는 생식 세포를 사고 파는 것이 과연 윤리적으로 옳은 것인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또한, 비 배우자의 수정의 문제로 인공수정은 말 그대로 타인의 정자를 제공받아 임신하는 것이기 때문에 정자를 제공한 사람과 그 정자를 통해 태어난 사람과의 관계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정자를 제공하면 할수록 자신의 유전자를 닮은 아기는 탄생하지만, 실제로 자신이 그 아이를 키우는 것은 아니고 남이 키우는 것이기 때문에 가족 관계에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왜냐하면 누가 진짜 엄마인지가 불분명해지기 때문이다. 유전자가 맞는 경우만을 이야기하면 입양해서 아이를 키우는 경우에도 엄마라고 불리는 경우를 배제하는 경우가 되기 때문이다.

 

세 번째는 대리모의 문제를 볼 수 있다. 생식 보조술은 대리모 기술의 새로운 형태로 불린다. 대리모는 어머니의 역할 중에 여성이 맡고 있는 임신과 출산의 과정을 대신해주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생식 보조술은 원래 대리모의 기술에서 발전된 형태로 기존에는 대리모가 불임 여성의 남성 배우자로부터 정자를 주입 받고 자신의 난자로 아기를 출생하는 형태를 말하는데 새로운 형태로 나온 개념으로는 불임인 부부로부터 난자와 정자를 받아 뱃속에 착상시켜서 임신하는 경우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대리모의 유전자적 문제는 전혀 들어가있지는 않은 것이다. 그래서 시험관 아기 법을 적용하여 아이의 출생을 판단한다. 이는 전통적인 대리임신의 개념으로 쓰였던 기술은 아기가 출생 한 뒤에는 난자가 대리모의 것이었기 때문에 아이가 출생하면 그 부탁한 부부는 대리모의 아기를 입양하는 절차를 거쳐야 했다. 하지만, 지금은 대부분의 경우 시험관 아기 법을 적용하기 때문에 진짜 유전자의 엄마가 나의 엄마인지 10개월동안 고생해서 낳아주고 뱃속에서 길러준 사람을 엄마로 보아야 할 지 혼란이 오는 상태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이런 윤리적 문제는 별로 가슴에 담아두지 않고 이 것보다 더 한 이기주의의 끝을 달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명품 정자를 판다는 광고를 하면서 자신의 성별, 나이, 아이큐, 키, 몸무게 등 자신의 장점들을 언급하며 최대한 어필하여 이 가치에 따라 가격을 다르게 받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또한, 대리모가 낳아준 쌍둥이 중에 장애아가 태어난 경우 그 장애아를 버리고 자신의 나라로 다신 돌아간 경우나 정말 우리가 평소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그런 일들이 실제로 일어나고 있음을 나는 알 수 있었다. 칸트는 생식 보조술에 들어갈 비용을 따져 생각해 본다면 자신의 생식세포나 자궁을 돈을 목적으로 한 수단이 될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여 돈이 생명보다 가치 있는 것으로 취급될 수 있다는 점에서 생식 보조술의 반대입장을 이미 밝힌바 있다. 이렇게 인간의 생명이 수단화 되고 있다는 점이 큰 문제이다.

 

청소년의 입장에서 바라본 생식 보조술은 이 기술 자체는 아기를 인위적 방식으로 만들어 내는 기술이기 때문에 아무리 과학적 기술의 가치를 지닌다 해도 인간의 존엄성 가치에 어긋나며 생명이 상업적, 수단적 목적으로 악용될 수 있어서 반대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많은 사람들이 생식 보조술을 찬성하는 입장 편에 서서 난임 부부의 고통을 감소시키고 행복을 증진시키며, 출산율을 높여 사회 존속에 기여하기 때문에 생식 보조술을 허용하지 않는다면 난임 부부의 고통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또한, 공리주의적 관점에 의한 사회적 합의가 이미 완결되었으므로 이 기술을 찬성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하지만, 생명 탄생에 있어서 인간이 인위적으로 개입하는 일은 발생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충분히 인간은 많은 부분에서 개입하였고, 충분히 파괴적인 일들을 해왔다. 난임 부부의 고통을 감소시킬 수 있는 방법에는 애초에 불임에 걸리지 않도록 스스로가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사에 따르면 많은 비율의 불임 부부들은 후천적인 이유로 생겨나며, 그 원인은 바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와 우울증 증가, 담배, 술, 그리고 커피의 과다섭취로 인해 주로 20-30대 연령층의 불임율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노력만 한다면 불임을 미리 예방할 수 있는 것이다. 또한, 생식 보조술 과정에 기형아가 발생하거나 태아가 사망하는 등의 문제가 발생하는데 이 문제로 인하여 생명경시 풍조 확산의 우려가 있기 때문에 반대한다. 실제로 기형아가 태어난 사례도 있었는데 이 사례에서는 호주에서 부부의 난자와 정자를 가지고 인도에 있는 한 여성에게 대리모를 부탁하여 아기를 낳는 과정에서 쌍둥이가 생겼는데 이 그 중에 한 신생아가 기형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호주의 부부는 정상적인 한 아이를 데려가고 나머지 아이는 버리고 자신의 나라로 돌아갔던 것이다. 그 부부의 이기적인 행동으로 인하여 그 아이의 생명은 그냥 무시를 당하고 만 것이다. 이런 사례로 볼 때 칸트가 생각한 바와 같이 정말 인간은 자신과 관련된 일이라면 어떤 일이라도 이기적인 행동을 할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넓은 우주라는 세계 안에서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는 그다지 반길만한 존재가 아닐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 자연과학에서 흔히 말하는 문제점들이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적어도 지구 안에서 서로 상호관계를 이루는 사람들 사이의 관계에서는 인간이라는 한 존재는 큰 의미를 가지고 있으며, 모든 사람이 존중 받을 권리가 있지 않을까? 하지만, 이런 사람을 탄생시키는데 까지도 인간이 개입하여 모든 상황을 인공적으로 만들어 버린다면, 앞으로 지구가 어떻게 변화될지 정말 무섭다. 이제는 지구 안에서도 이렇게 인간의 생명을 물건과 같이 대한다면 어떤 한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정말 이거는 한 번이라도 제대로 생각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태어나는 것에 있어서는 자연에게 맞기는 것은 어떨까? 저는 여러분들의 생각이 궁금합니다. 사회는 여러분의 선택에 의해 돌아갑니다.

 

#2 인상 깊었던 주제: 인간 중심주의, 생태 중심주의

 

인간과 자연의 관계에 대하여

 

나는 학교 윤리시간에 인간 중심주의와 생태 중심주의를 배우면서 레오폴드( Leopold, A.)의 대지 윤리의 관점에 매혹되었다. 레오폴드의 대지윤리(land ethic)는 모든 윤리는 단 하나의 전제에 의존하여 진화되어 왔다고 하는 의미를 가진다. 레오폴드에 의하면, 대지는 물리적인 의미의 단순한 토양이 아니라, 인간을 비롯한 자연의 모든 존재들이 서로 그물망처럼 얽혀있는 땅을 터전으로 한 생명공동체라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생태계 전체를 하나의 도덕적인 공동체로 보고 이를 존중할 것을 요구 한다. 나는 지금까지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독립된 존재가 아니라 자연의 일부라는 말은 많이 들어보았다. 하지만, 자연이 자체적으로 도덕적으로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알게 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유혹되었다.

 

사실, 도가사상에서도 인간을 자연의 일부라고 보며 전제가 하나를 이룬다고 주장한다. 도가사상에서 인간은 자연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인위적인 것을 추구하는 것은 옳지 않고, 자연적인 것을 따르고, 외모 지상주의의 입장에 관해서는 ‘호접지몽(胡蝶之夢)’이라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자연의 입장에서 바라보아야 하며, 자연에서 나뭇가지가 스스로 자신은 휘었으니 곧게 선 나뭇가지를 따라 인위적으로 바꿔야겠다고 생각 하지 않는 것처럼 인간 또한, 지금 그대로의 모습을 받아들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래서, 나는 지금 현재 사회에서 이슈가 되는 문제들에 대해서 쉽고 간단하지만, 평화스럽게 문제를 바라볼 수 있는 관점을 가지게 되었다. 어떤 사람은 시대가 발전할수록 복잡해지는 사회의 변화에 따라 그로 인하여 발생하는 문제도 다양한 환경요인들을 고려하여 생각하고 해결방안을 찾아내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생각해보면 인간이 먼저 자연의 허락 없이 마음대로 무분별하게 파괴하고 사용했다. 여러 사회이슈들은 결국 인간이 만들어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젠가는 인간이 그에 따른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단순히 자연의 관점에서 모든 문제를 바라본다면 어떤 문제든지 답을 쉽게 결정지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대지 윤리의 이야기를 돌아가보자. 우리사회에서 만약 모든 사람들이 자연은 도덕적 가치를 지닌다고 주장하고 그에 행동한다면, 과연 어떤 결과를 얻게 될까? 지금 급성장 중인 사회 혹은 과학의 발전이 느려지는 결과를 얻게 될까? 나는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반대의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오히려 사회와 과학분야가 더 올바른 방향으로 성장할 것이다. 우리가 자연을 인간과 같은 도덕적 가치로 여긴다면, 먼저 지구 온난화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우리가 폐수를 강으로 흘려 보내는 일, 공장의 매연으로 인하여 지구 온난화가 심각해져, 빙하가 녹고 바다의 해수면이 높아지는 것은 지금까지 우리가 자연을 우리와는 상관없는 것들이며, 우리가 필요할 때면 언제든지 사용할 수 있는 사물과 마찬가지라고 대했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직 인간을 위한 이기적인 행동을 해왔다고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이 점이 개선된다면 보다 지구의 아픔을 덜어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동물뿐만 아니라 모든 무생물도 도덕적인 가치로 보는 것이기 때문에 실험을 통해 연구를 하려는 사람들은 최대한 생물들에게 피해를 끼치며, 도움을 청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해결할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보다 많은 장점이 있겠지만, 자연과 인간이 친해지면서 저절로 친환경적인 일을 습관화하게 될 것이며, 모든 것을 자신의 가족과 같이 여기기 때문에 누가 더 가치 있는가에 대해서는 따지지는 않게 될 것이며, 도가사상에서 자연의 관점에서 인간을 바라보는 자세를 갖게 되어 싸움 없는 사회가 만들어질 것이다.

 

실제로 생태 중심주의를 주장하는 레오폴드는 자연을 살리고자 하는 운동에 참여하였던 많은 철학자들과 함께 적극적으로 동참하였고, 자연과학자로서 삼림청 현장 공무원으로 일하기도 하고 위스콘신 대학교에서 생물학 계통의 교수로도 지낸 적이 있다. 그래서 레오폴드는 “근대 환경 윤리의 아버지”라는 소리를 들었다고 한다. 지금까지는 나는 자연을 말을 통해 인간과 의사소통을 할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에 인간이 마음대로 소유하거나 처분하는 것에 대하여 인간이 자연에 대한 도덕적 책임과 의무를 지니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왔던 것 같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을 바꾸고, 자연은 누구에게도 재산 같은 소유물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습관처럼 몸에 베게 하여 나부터 실천하자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우주라는 자연 안에 작지만, 아름다운 행성인 지구라는 별에 살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존재할 수 있고, 숨 쉴 수 있는 것은 다 자연덕분인데 자연을 함부로 해도 되는 것일까? 우리가 모르는 것을 자연을 다 알고 있을 텐데 무생물에게도 눈이 달려 있어 언제든지 인간을 공격해 올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위에서 입장을 밝힌 것처럼 대지 윤리의 주장처럼 우리가 다 그러한 생각을 가지고 지구에서 살아간다면 엄청 좋겠지만, 현실적으로 우리에게 그런 날은 일찍 찾아오지 못할 것이고, 그저 이상적인 이상향으로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우리 모두가 다같이 지금까지 자연에게 대한 태도에 반성하고, 하루라도 더 나은 태도로 자연을 대하게 된다면 언젠가는 그런 이상적 이상이 현실이 될 수 있지 않을 까? 는 작은 희망의 불씨를 가져본다 

 

글=김령아

편집=편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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