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살아있는 역사, 3·1 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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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완뉴스=임윤아] 일제 강점기 때 모든 것을 빼앗겼다. 정체성을 찾아가며, 사회적 독립을 준비해야할 시기인 꽃다운 학생들, 제 자신이 나고 자란 나라 잃은 슬픔에 빠져 미래를 꿈꾸지 못하게 하였다. 한 떨기 같은 학생들이 힘을 모아 제 자리와 조국을 지키기 위해 나선다. 하나뿐인 목숨을 앞세워서 말이다.

교과서로만 배우던 학생운동의 흔적을 고향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그리 먼 곳에 위치해있지 않았다. 조금만 걸으면 숨겨진 공원이 나오는데, 그곳에 태극단 학생 독립 운동 기념 공원이 존재한다.

역사를 배울 때마다 종종 생각한다. 내가 위인이라 불리우는 어린 학생처럼 나서서 운동하고, 제 목소리를 높일 수 있었을까 하는, 내 애국심에 대해 생각해본다. 조국을 위해 한 목숨 바칠 수 있는 사람인가.

나라보다 나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도 판단이 되는 것이 결코 잘못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항일독립운동에 제 온몸 다 바친 그들을 떠올릴 때마다 내가 존재하는 이 자리의 무게에 대해 다시 깨닫게 한다.

1919년 3·1운동 때 대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대구고등보통학교, 개성학교, 신명여학교, 성경학교 학생 등 천여 명이 모여 시작되었다. 4월 15일 대구 대명동 공동묘지에서 최경삼(崔敬三)의 딸 제례에 모였던 50여 명의 군중에 의해 독립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1960년 2월 28일 학생운동이벌어졌는데, 이 역시 대구에서부터 시작되었다. 2·28대구학생시위가 고등학생의 손에서 시작되었으며, 대구 시내에 2·28 공원이 존재한다. 1,500여명의 고등학생이 부당한 등교 강요와 고등학생 신분을 짓밟는 짓에 대해 시위를 벌였다. 4ㆍ19 혁명의 불씨였던 셈이다.

현재에도 독립운동가의 정신을 잊지 않고 계승되고 있다. (사)항일독립운동가단체연합회(http://www.hddy.or.kr/ )라는 지부가 존재하며, 홈페이지에서 수많은 독립운동가와 업적을 상세히 볼 수 있다.

매해 달서구청장님이 추념식에 참석하신다. 그들을 기리며, 현재 상원고로 자리 잡은 대구 상인동이 제 뿌리와 온몸 가득 들어있는 자유와 혼을 잊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그들의 피와 정신이 우리 온몸에 담겨져 있다고 믿으며, 더불어 살아가게 된다면, 세상은 보다 나은 얼굴로 우리를 반겨줄 것이다.

글,사진  임윤아 칼럼리스트 (rmftmftkfka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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