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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국립극단 어린이청소년극연구소)

 

국립극단이 2015년 가을 끝 무렵, 청소년 극으로 관객들을 찾아왔다. 청소년 극이라고 하면 대부분 사람들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공연하는 작품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의 넓은 폭으로 다양한 청소년 극들이 등장하고 있고, 그중에서도 연극 <비행소년 KW4839>는 청소년들을 주제로 가져가고 있지만, 결코 청소년들 ‘만’을 위한 작품은 아니었다고 확신한다.

 

총 9명의 배우가 저마다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 붓는다. 화려함이 묻어 나오는 대사보다는 지극히 일상적인 어투로, 어쩌면 자신의 이야기 깊은 곳에 있는 각자의 감정까지도 담담하게 뱉어낸다. 이런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가슴 한구석에서 무언가 알 수 없는 감정을 느낄 수 있다. 아마도 이는 공감에서 비롯되지 않았나 싶은데, 바로 이것이 청소년 극의 특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사전적으로 ‘청소년’은 9세 이상 24세 이하인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청소년은 누구에게나 그때 그 시절인 과거로 남아있을 수도, 지금 현재로, 혹은 미래의 모습 일 수도 있다. 그래서 연극 <비행소년 KW4839> 안에서의 청소년은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고, 공연장 입장과 함께 허구의 세계로도 입장하는 연극의 묘미로 지금 이 순간 청소년이 아닌 이들마저도 공감할 수 있는 요소가 다분하다.

 

‘저에게는 한계가 고민입니다. 저에게 한계라는 단어는 되게 공포스럽습니다. 제 자신에게 한계를 느낀다든지, 배경에 한계를 느낀다든지, 어느 부분에서든 한계를 느낀다면 저는 끝날 거라고만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한계는 인정해버리면 그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정말 바보 같은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아직 맛보지 않은 한계와 고민을 얼른 맛보고 져버리려는 제 자신이 부끄러웠습니다.’ 라는 외침을 각 인물들은 한 명씩 일어나서 함께하기 시작하고 어느새 이 작은 외침은 큰 울림으로 공연장을 가득 채운다.

 

계속해서 반복되는 외침에 어느샌가 공연을 보는 나 또한 그들을 따라 중얼거리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고, 이 작은 외침은 어딘가 모를 나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다는 감정을 느꼈다. 어디로 가는지 혹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를 지경이던 나라는 사람에게도 한계라는 것은 꼭 이러한 무엇이었다. 말로도 글로도 표현할 수 없는 한계를 바라보고 있는 나 자신이 너무나도 어리석게만 느껴져 이 불완전한 시기 속에 버려진 듯한 기분을 종종 느꼈는데, 연극 <비행소년 KW4839>는 이리저리 휘둘리는 날에 사는 위태로운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해 준 작품이었다.

 

연극 <비행소년 KW4839>는 작품의 내용을 제외하고도 아직은 미숙하고 불완전한 청소년들의 심리를 다양한 영상, 조명, 음향으로 표현해 이목을 사로잡았다. 연극에서 흔히 들을 수 없는 음악들과 화려한 영상, 조명으로 그들의 혼란스러움이 확연하게 드러났고 첫 시작부터 끝까지 강렬했다.

처음으로 내•외부의 ‘한계’와 부딪치며 세상으로 나아가는데 ‘기다림’을 배우는 그들. 자신만의 화려한 비행을 꿈꾸는 우리 모두가 비행소년이다.

 

-여민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