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없음-1

 

 

[수완뉴스] 학생인권조례가 도입되면서 교권이 침해 받는 학교 현장이 뉴스에 자주 보도되고 있다. <교권침해 심각해 “30년 전엔 상상도 못했는데“> <강력한 학생의 신분에 추락하는 교권침해> <’전국 최초’ 서울 학생인권조례종합계획 수립……무너진 교권은?> 등이 바로 그것이다. 학생인권을 중요시 여기면서 체벌이 금지됐다. 위의 기사 제목처럼 30년 전과 같이 공부 못하고 결석하고 대드는 학생들을 일렬로 죽 세워놓고 때릴 수도 없고 인신공격을 할 수도 없다. 심지어는 학생들이 역으로 교사에게 욕설과 손찌검을 한단다. 뉴스 보도의 사건 자체는 펙트이기 때문에 반박할 여지는 없다. 대신 학생과 교사의 관계에 주목해보자.

교사는 학부모와 학생에게 신체적◦정신적 피해를 입었을 경우 대처 방식이 명확하다. 요즘같이 교권 하락으로 인한 혼란을 우려하는 시점에서는 기대하는 반응도 더욱 빨리 나타난다. 또한 신고를 하는 과정에서 입을 피해가 없기 때문에 당당하고 사건의 대부분이 표면으로 드러난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어떨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교권 침해 사례에 비해 학생 인권 침해 사례는 극히 일부분만 겉으로 드러난다는 것이다. 안타깝지만 현 대한민국 교육의 종착지는 서열화된 ‘대학’이다. 자신의 꿈과는 상관없이 대학을 잘 가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갖고 있는 학생들은, 자신의 인권이 교사에 의해 침해 받는다고 느껴도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 좋은 고등학교와 대학을 가기 위한 ‘생활기록부(이하 생기부)’가 교사의 손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방송에서는 ‘체벌 금지’와 ‘두발 자유화’에만 초점을 맞춘 뉴스만 보도된다. 그러나 진짜 학생인권 침해 사례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아 끝없이 썩어 들어가고 있는 교사들의 ‘특권 행사’다. 방학인데도 학교를 가는 학생들은 과연 ‘자기주도학습’을 위해 등교하는 것일까? 학생들은 말한다. “사실 학교 보충 수업은 재미도 없고 내 수준은 전혀 고려하지 않아서 학원을 가려 했는데 갑자기 담임 선생님께서 부르시더라고. 교무실로 갔더니 노트북에 내 생기부를 띄워두시곤 방학 때 학교를 안 나오면 독서 활동부터 과목별 세부 특기 사항, 진로 활동, 동아리 활동, 행동발달사항까지 싹 다 지워버리겠다는 거야. 드래그까지 해두셨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더라고. 그래서 그냥 학교 나오겠다고 했어.” “우리 반에서 공부 제일 잘하는 애도 학교 안 나가겠다고 했더니 진짜 생기부가 하얗게 됐어. 학교의 자랑이라고 예뻐할 땐 언제고……걔 말 들어보니까 수시 버리고 정시 준비한다고 하더라.” 울분을 토하는 학생들의 사연은 가지각색이지만 방학 보충 수업을 학교에서 강요하는 이유를 묻는 질문에는 모두 한 목소리다. 40만원대를 넘나드는 수업료 때문이라는 것이다.

방학 시즌이 아닌 학기 중에도 ‘생기부 협박’은 통한다. 학교에서 ‘공부 좀 한다’는 학생들은 모든 교과 선생님의 관리를 받는다. 따라서 야간자율학습도 무조건 나와야 한다. 우수한 학생이 야자를 해야 다른 학생들도 학교에 남아있는다는 이유에서다. ‘강제 야자’가 부당하다는 목소리로 인해 교육청이 학생들의 신청서를 받아 자율적인 자습을 실시하도록 했지만 그들은 알고 있다. 이는 감사를 피하기 위해서 짜고 치는 고스톱을 합리화하기 위한 종이쪼가리에 불가하다는 것을 말이다.

대학을 가기 위한 학생들의 몸부림은 치열하다. 경쟁을 조장하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선생님께 예쁨 받으려는 것 조차 경쟁이 되고 있다. 교사들에겐 당연한 일이다. 단지 컨트롤이 안 되는 두려움의 대상은 대학에 관심 없는, 즉 생기부 협박이 먹히지 않는 학생들이다. 우리는 저 좁은 대학 문을 통과하려는 수십만 학생들의 ‘진짜’ 인권 침해를 고려해보지 않았다. 교권과 학생인권을 주장하는 저 목소리들 가운데서 교육 당국은 혼란에 빠진 모습만 보여줬다. 제도도 엉성했고, 도입 과정도 어설펐다. 그러나 가장 본질적인 문제를 짚자면, 학생인권을 주장할 힘도 없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들어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사교육이 판치는 대한민국에서 공교육 정상화를 꿈꾸고 있는 이들에게 한마디 하자면, 학교를 단순 입시학원으로 전락시키지 말아라. 방법은 단 하나다.  몸을 웅크리고 사는 학생들의 목소리를 듣자.

안신영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