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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햇빛샤워> 프로그램 북, 여민주 칼럼니스트)

이야기의 시작은 소소하다. 백화점에 다니면서 이름을 바꿔보려 하지만 전과가 있어 이름을 바꾸기가 쉽지 않은 광자, 그녀가 세 들어 사는 집의 순진한 청년이자 자신이 사는 달동네에 연탄을 무료로 나눠주는 동교. 이 둘이 얽혀 만들어진다. 광자와 동교가 만들어가는 연극 <햇빛샤워>는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가 아닌 이 사회를 살아가고 있는 두 명의 인물로서 우리들의 사회를 바라보는, 바라봄의 방식이 다른 두 사람의 이야기라고 볼 수 있다.

 

연극 <햇빛샤워>는 ‘싱크홀’이라는 소재가 등장한다. 실제 무대 또한 이를 표현하기 위해 직접 위 아래로 움직이는 무대 장치를 만들었다. 이것으로 그 깊이를 잘 느낄 수 있고 위 아래로 움직이는 모습 속에 우리는 각자의 의미를 부여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싱크홀이 표면적으로 발생하는 것과 우리가 이를 마주하는 것은 갑작스러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에게는 더 공포스럽게 다가오기도 한다. 하지만 본래 싱크홀은 오랜 기간 진행된 작용의 결과로 우리가 그 기간을 감지하지 못할 뿐 계속해서 진행하고 있었다. 점차 긴장감이 고조되고, 그 긴장감을 쫓아가며 보게 되는 결말은 충격적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나 나는 연극 <햇빛샤워>의 ‘싱크홀’이라는 소재와 맞닿아 생각해본다면 광자의 마지막 행동이 그리 충격적으로만 느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소원대로 이름을 바꾸는 데 성공한 아영(광자)은 옆집 아이 동교의 죽음으로 자신의 이름을 포함한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나에게 광자의 마지막 외침은 ‘왜’라는 의문으로 시작했지만, 점차 그녀의 외침이 안타까운 선택으로 받아들여져 처음처럼의 물음표를 단 의문은 사그라들었다. 광자는 깊은 ‘싱크홀’에 빠진 것이 아니다. 광자와 같이 우리가 사는 이곳이 싱크홀일 뿐 우리 모두가 이곳에서 벗어나려, 더 밝고 넓은 곳을 위해 애쓰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허구의 이야기이지만, 우리들의 삶과 비슷할지도 모르겠다.

 

연극 <햇빛샤워> 속 광자가 이토록 발버둥 치는 이유가 무엇인지, 왜 우리가 사는 곳에 싱크홀이 오랜 기간을 거쳐 만들어지고 있었는지를 생각해보게 한다. 더불어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햇빛이 쏟아지지만, 그녀는 햇빛이 부족한 사람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햇빛은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져준 연극 <햇빛샤워> 였다.

 

-여민주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