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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열이 둘째가라면 서러운 대한민국에서 ‘입시’는 항상 뜨거운 감자다. 어렸을 적부터 학부모들은 자녀들을 소위 ‘명문 학교’에 보내기 위해 입시전략설명회를 찾아 다니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성공적 입시를 위한 각종학원에 막대한 지출을 아끼지 않는다. 농어촌 특별 전형이 유리하다는 말을 들으면 주소 이전을 고려해보기도 하는 그들에게 있어 최근 핫이슈가 되는 전형은 바로 ‘논술 전형’이다.

명문 강사들이 모여 있다는 대치동에 가면 대형 논술 학원을 쉽게 발견할 수 있고, 몇 년 전부터 유명 인터넷 사이트에 논술 배너가 큼지막하게 걸려있는 상황으로 미루어보아 그 열풍을 짐작할 만 하다. 상위권 대학이라 하더라도 수시, 정시 모집과는 다르게 내신 반영이 적게 되는 감이 없지 않아 있고, 심지어는 내신과 수능 성적 모두 고려하지 않는 학교도 있어 많은 학생들이 논술에 공을 들인다.

대학에서는 각 주제를 주고 정해진 시간 안에 학생의 생각을 논리적으로 서술하기를 요구하고 잇고, 이는 얼핏 보면 프랑스의 대학고사 ‘바칼로레아’와 유사해 보인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대학에서 학생의 가치관과 작문 실력을 보기 위해 실시한다는 ‘논술’ 전형의 실제 모습은 답을 요구하는 ‘서술형’ 문제일 뿐이다. 모 대학의 논술 최고 비율 합격생을 배출해 냈다는 유명 논술학원에서는 방법론을 정리해 둔 수십 장의 유인물을 배부하며 강의한다. 합격생의 후기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기 생각만 쓰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대학에서 원하는 답이 있기 때문에~”로 시작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는 대한민국이 아직도 획일화된 사고방식의 탈출구를 찾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과거 우리나라에서는 단 하나의 글감을 주고 선비들의 가치관과 지식을 평가할 수 있는 ‘과거제도’를 실시했다. 어떤 상황, 시대에서도 통용되는 도덕의 보편적 잣대만 존재할 뿐 정해진 답도, 평가자를 고려한 방법론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금 우리가 지식의 확장과 적용, 그리고 나라에 훌륭한 일꾼이 될 사람을 가려내는 방법이라고 확신하는 이 제도들은 사실 타도해야 한다고 부르짖는 일제강점기의 산물인 것이다.

학생들의 사고를 획일화 시키고 경직시키는 시도는 아주 어렸을 때부터 시작된다. 필자는 초등학교 1학년 ‘바른 생활, 슬기로운 생활’ 과목을 밤새도록 달달 외웠음에도 불구하고 서술형에서 대부분의 문제를 틀려 좌절을 맛봤다. <보기>에서는 “비 오는 날 동생과 내가 학교에 가야 하는데 신발장을 보니 우산이 한 개 밖에 없었다. ‘나’라면 어떻게 행동할지 쓰시오” 라는 상황이 주어졌고, 문제에서는 ‘배려심’을 평가한다고 했다. 필자는 배려심을 가득 담아, ‘어린 동생과 사이좋게 우산을 같이 쓰고 가겠다’라고 썼지만 ‘동생에게 우산을 주겠다’는 모범 답안과 다르다는 이유로 감점도 아닌 0점을 받았다. 더 놀라웠던 사실은, 반에 있던 대부분의 아이들이 모범 답안을 제출했다는 점이었다. 도덕 과목 서술형은 대부분 비슷한 이유로 틀렸다는 평가를 받았고, 처음으로 도덕 서술형 만점을 받은 건 ‘혁신학교’에서 ‘생각의 다름’을 인정받았을 때였다.

이렇게 어렸을 적부터 형성된 대한민국 학생들의 획일화 된 사고방식은 급변하는 세계에서 혼란을 겪을 수 밖에 없다. 외국의 기술과 자본을 받아들이는 것이 힘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지만 더욱 염려되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배워본 적이 없기 때문에 타인의 ‘다른’ 생각부터 문화, 종교, 인종 등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이 자연스럽지 않다는 점이다. 이민자들의 ‘한국인들이 가장 인종 차별적인 태도를 가지고 있더라”는 말들이 빈번하게 들려오는 것은 바로 ‘다름’을 수용하고 어울리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대학 진학률이 가장 높은 나라, 문맹률이 가장 낮은 나라. 모두 명예로운 타이틀이다. 이젠 그 뿌리부터 건강한 종자로 바꿔 심고 ‘모든 국민이 포용적이고 행복한 나라’라는 타이틀을 얻어야 할 때다.

-안신영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