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판] 귀향, 모든 것은 타버리고 분노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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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완뉴스=문화,역사]원준 기자, 얼마 전 많은 이들의 입소문의 중심에 있는 ‘귀향’을 직접 관람하기 위해 대학로의 한 영화관을 방문했다. 영화관에 도착해 바로 예매를 하려 했지만 예매율 1위를 달성하고 있는 영화인만큼 자리가 거의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수가 좋았는지 영화를 감상하기에 편한 자리를 예매하는 데에 성공했다. 힘들게 좋은 자리에서 보게 된 ‘귀향’은 수작이었다. 영화는 일제강점기 치하에서 위안부 생활을 겪었던 ‘영희’의 과거와 현대를 오가는 형식으로 이뤄졌다. 그 둘을 연결하는 매개채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과 같이 성폭행을 당한 ‘은경’이라는 무당을 택했다는 점 역시 참신했다. 무엇보다 ‘과거와 현대를 오가는 과정이 자연스럽다’는 점에서 ‘귀향’은 잘 만들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다음, 필자의 가슴 속에서 느껴지는 것은 감동이나 속시원함이 아니었다. 온몸을 휘감는 어떤 형태의 답답함, 또는 ‘분노’나 ‘화’라고 불리는 것이었다. 영화에서 볼 수 있듯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은 지금의 우리로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영화는 마무리에 ‘귀향굿’을 하는 모습을 보여주며 마무리 짓는다. 물론 그 장면이 영화를 보는 사람들에겐 감동을 선사한다. 어떤 해결책도, 피해자들에게 보상해주는 내용도 아니었다. 이가 시사하는 것은 아마도 우리 사회 내에서나 국제적으로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어떠한 형태의 매듭도 짓지 못했다는 것이 아닐까. ‘귀향굿’이나 ‘진혼제’ 등으로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장면으로 마무리되는 것은 사회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이나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는 점을 꼬집는 것처럼 보인다.

작중에서 ‘정신대피해자신고’를 하는 장면에서 ‘영옥(영희)’이 신고를 하려고 갔다가 하지 않고 돌아서던 중 “미친 사람이 아니고서야 그런 피해 사실을 밝히겠냐”라는 소리를 듣고 “내가 그 미친년이다”라며 소리를 지르는 장면이 나온다. 물론 그 때의 시대적 배경은 1991년이다.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관객들도 분명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얼마전 상황을 떠올려보자. 최근 우리 정부는 일본국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합의를 피해자들과의 어떤 합의도 없이 쥐도새도 모르게 일본 정부와 협의해 문제가 된 바 있다. 그 때 신고한 피해자들이 지금 위안부 협의에 어떤 반응을 보이고 있는지 되새겨 본다면, 그리고 가해자들이 어떠한 국제법, 또는 일본 형법상의 처벌도 받지 않았다는 점을 상기한다면 지금 상황도 과거와 상이하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귀향’은 수작이지만 논란이 많은 영화다. 대체적인 평은 호평이지만 ‘감동을 위해 마무리를 잘못 택했다’는 사람들도 있고, 소수의 네티즌들은 ‘역사적으로 검증된 사실이 아니다’라며 비판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엄연한 역사적 사실이고 피해자들에게는 합의를 거쳐 보상받아야 할 마땅한 권리가 있다. 이를 생각하면 우리가 정말 이 영화를 보며 맞춰야 할 주안점은 일본인 ‘위안부’ 피해자들이 ‘보상이나 대처방안’이라고 느낄 수 있는 최소한의 조치도 취해지고 있지 않은 현실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을까. 영화 속 일본군에 의해 ‘태어지는 처녀들’과 함께 다른 감정은 모두 타버리고 ‘분노’만이 남게 된 하루였다.

글 원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