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완뉴스=임윤아 칼럼리스트] 대구의 몽마르트로도 유명하며, 선교사가 거주했던 주택이 있기도 한 곳이다.

긴 계단을 오르다보면, 오른쪽 벽면에 붙어져 있는 자료를 확인할 수가 있다. 실제 그 시절에 찍었던 흑백 사진들이 참고 자료로 남아있다.

계산성당과 대구 전경 (성당 앞 쪽 기와집은 안중근 의사가 강연했던 당시 교육기관 해성재이다. 2층 기와집은 당시 신부 사제관이며 성당 앞으로 흐르는 내천은 대구에서 유일한 빨래터로 많은 물이 흘러 달성공원 쪽으로 연결된다.)교남기독청년회 (대구선교지부가 청년 선교를 위해 1914년에 지은 건물이다.) 이 건물 안에서 이만집, 정광순, 김태련, 백난채, 김영서, 권희윤, 최경학, 이재민 등의 교계 청년들이 모여 교남기독청년회를 조직하고 대구 3ㆍ1 운동시 전 회원이 참여하였다. 대구고보는 교장이 일본인이며, 교사들 중에서도 일본인이 많은 관립 학교임에도 불구하고, 전교생 약 200여 명이 대구 3ㆍ1 운동에 참가했으며 징역 6월에서 1년의 선고를 받았다.

대구 근대골목 투어에서 필수 코스로 있는 3ㆍ1 만세운동길과 청라언덕 그리고 계산성당. 이 선명한 역사가 그대로 존재한다. 길을 쭉 올라 직진하면, 바로 옆에 챔니스 주택, 블레어 주택을 볼 수 있다. 내부로 들어갈 순 없어도1910년경에 지은 주택을 가까이서 볼 수 있다.

청라언덕 동무생각이라는 가곡 역시 볼 수 있다. 역사를 쭉 차례대로 보며, 몰랐던 역사적 사실을 알 수 있어 그 어느 때보다 생생한 배움의 시간으로 남으리라 믿는다.